카나타는 키마이라가 수화할 때 입고 있던 옷이 어디로 가는지 궁금해했던 적이 없다. 전투가 끝나면 자연스럽게 돌아오는 것만 알았다. 하지만 비늘 위에 사람의 피부 빛깔이 떠오르고 의복으로 덮이는 것은 신기했다. 토오루는 두 팔꿈치를 세워 몸을 일으키는 대신 위에 자리 잡은 인물을 올려다보았다. 그가 거느린 에이전트 아밧돈의 자식이 거기 있었다. 카스가 카나타, 그는 디아볼로스의 자식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아밧돈과 디아볼로스가 결혼을 하거나 혼외자식을 만든 것은 아니었다. .. 적어도 '이곳' 에서는.
D로이스: 시간술사 (크로노 트리거) 를 보유한 이들은 시간을 되돌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대개 초 단위의 무척 짧은 시간에 불과했다. 카나타처럼 몇십 년의 시간을 되돌린 이는 없었다. 많은 이들이 그의 말의 진위를 의심했다. 토오루는 믿었다. 그는 많은 세계에서 지표로 삼을 만큼 커다란 특이점이었고 그도 그 사실을 알았다.
카나타의 코드 네임은 프린스였다. 왕자이자 대공이자 제후. 그는 자주 또 다른 왕자인 토오루에게 도전했는데, 그럴 때마다 성격이 나쁜 토오루는 정면으로 받아주는 대신 교묘하게 회피해서 그를 짜증나게 만들곤 했다. 그가 인상을 찌푸리는 모습을 보는 게 좋았다. 그러나 그는 지금 엷게 웃고 있었다.
토오루가 입을 열었다.
"확실히, 이런 식의 쿠데타는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제후."
"그럼 오늘은 내 승리군."
그의 손은 여전히 바닥에 누운 토오루의 배 위에 얹혀있었다. 호흡에 따라 미미하게 위아래로 움직였다.
"네, 저를 놀라게 하려고 했던 거라면."
토오루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 손을 치워주시겠습니까?"
카나타가 대답했다.
"손을, 치워야 하나?"
그는 손바닥을 위로 밀어올렸다. 옷 너머로 탄탄한 근육이 자리함을 느낄 수 있었다. 토오루는 숨을 들이마시며 복부를 긴장시켰다. 인간들 사이에 위화감 없이 녹아들기 위해 들인 습관이었다. 그도 자신이 인간을 모방한 괴물임을 알았다. 완전 수화로 어느 정도 본연의 힘을 개방한 무시무시한 모습도 목도했다.
'그런데 왜?'
"이 몸은 의태한 것에 불과합니다."
"나는 '이 시간'을 빌린 것이나 다름없고. 그 몸이 네 진짜 모습이건 아니건 내게 중요한 문제는 아닐 터."
교미인 동시에 정복이었다. 공식적으로 신불임을 인정받은 이것을 꺾고 싶다. 무엇도 흔들지 못한 굳건함과 무례를 허용치 않는 강인함에 호승심을 느낀다. 대부분의 상황에 적절한 표정을 만들어 붙이는 그가 진심으로 곤란해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목을 휘감은 푸른 넥타이를 잡아당기면 매끄럽게 스치는 소리를 내며 풀려나간다.
불친절한 설명이었지만 토오루를 납득시키기엔 충분했다. 그가 말했다.
"타임 로드는 외계인인걸 깜빡 잊고 있었군요."
오타쿠가 아닌 카나타도 닥터 후는 알았다. 그가 짧게 웃었다. 이윽고 토오루의 시선이 잠시 허공에 머물렀다가 카나타에게 되돌아왔다.
"원하는대로 해도 좋습니다. 다만.. 저는 인간에게 성적 흥분을 느끼도록 태어나지 않아서 처음엔 조금 재미없으실 수도-"
"방금 전엔 외계인이라며?"
지부장 집무실에 밤이 찾아왔다. 아니다, 그림자였다. 카나타의 의지대로 움직이는 그림자가 두 사람을 에워쌌다. 블랙홀이 빛을 끌어들이듯이 카나타를 중심으로 모인 그림자와 그가 이어지면 변화가 찾아왔다. 그의 기원을 의심할 정도로 형태가 흐릿해지고 녹아내리듯 일렁인다. 토오루의 재킷을 벗겨내는 카나타는 이제 사람보다 그림자에 가까웠다. 변화는 토오루의 흥미를 자극했다. 그가 레니게이드 비잉인지 생각해보았고,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한 뒤에는 그의 목에 팔을 둘렀다. 다행히 토오루의 팔이 카나타의 목을 통과해 흘러내리는 일은 없었다.
"좋습니다.. 좀 흘러내리긴 하지만, 하는 데엔 문제 없겠죠."
토오루는 바닥은 불편하니 책상이든 소파든 몸을 섞기에 더 나은 곳으로 가자고 제안했다. 카나타는 그 조건을 수락했다. 실망하기엔 아직 일렀다. 그가 동정이었을 리 없다. 절대로. 카나타의 대형 바이크도 걸 수 있었다. 카나타의 팔이, 전신이 토오루의 몸을 감쌌다. 곧 시야가 암전된다. 장막이 걷히면 드러나는 정경은 누군가의 집 침대 위였다. 토오루는 카나타의 집이라고 확신했다. 좁은 듯 하나 혼자 사는 걸 감안하면 적당하다. 형편에 맞추어 되는 대로 사들인 물건은 보이지 않았다.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카나타의 취향에 맞게 계획한 끝에 들여왔을 것이다.
"미래에 당신이 살게 될 집이군요."
카나타가 인상을 찡그렸다.